* 히든>절제 엔딩 이후(약 1~2년 뒤)
* 오리지널 엑스트라가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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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니는 신경질적으로 냉동고를 두들겼다. 침묵을 지키고 있던 사각 박스 형태의 전자제품은 덜덜 떨리더니 이내 작은 모터 소리를 내며 작동을 알렸다. 내부가 정말로 차가워지고 있는 지는 몇십 분이 지나야 알 수 있을 것이다. 냉매 파이프가 멀쩡하길 빌어야지.

방 바깥, 모래 먼지가 가득 쌓인 복도 쪽에서 조니를 부르는 소리가 났다. 돌아본 것과 동시에 술병이 날아와 반사적으로 잡는다. 내용물이 가득 차 있는 유리병은 미적지근한 온도였지만 배드랜드의 열기에 비하자니 시원하게 느껴졌다.

“나 때문에 고생하고 있으니 마셔.”

젊은 노마드는 문간에 서서 이미 뚜껑을 딴 술병을 들고 생색을 냈다. 처음 그와 마주쳤을 땐 자기 흉통의 절반 정도 되는 구식 사이버덱을 끌어안고 도망치는 것만도 벅차 보였는데. 눈썰미가 제법인지 이 낡은 강판 오두막 어디에선가 마실 수 있는 술을 그러모은 모양이었다. 거기다 조니보다 한발 먼저 다른 방의 냉장고 문제를 해결했단 얘기도 되었다. 은근슬쩍 자랑이군.

“센촌이네.”

“싫어해?”

술병의 라벨만 들여다보고 있는 조니에게 노마드가 물었다.

“아니.”

조니는 짤막하게 부정했다.

“친구가 좋아하던 거라.”

미묘한 과거형의 뉘앙스에 젊은 노마드는 그것참 안 되었다며 위로를 해야 할지 못 본 척 넘겨야 할지 고민했다. 그는 시간을 벌기라도 하듯 말없이 술병을 기울여 목을 축이면서 조니의 눈치를 보았다.

조니는 그 짤막한 시간 동안 대뇌피질 사이에서 센촌 테킬라의 맛을 찾아내었다. 마노mano가 열광하며 웃고 떠들던 소리도 함께 의식 위로 딸려 올라왔다.

“네가 얼음 욕조에 들어가면 난 해줄 게 없어. 갈 거야.”

조니는 테킬라 병을 따지 않고 창틀에 기대었다. 유리 없이 뻥 뚫려있는 창 구멍 너머로 텁텁한 황색 땅 위에 빼곡히 늘어서 있는 바이오테크니카의 플랜트들이 보였다.

젊은 노마드는 넷러너였다. 방치했다간 훗날 클랜에 위해가 될 수 있는 데이터가 바이오테크니카의 데이터베이스에 남아있었고, 그는 거기에 ICE를 뚫고 들어가서 데이터를 지워야 한다는 사명이 있었다.

“기업의 ICE를 뚫겠다고? 찾아보면 좀 더 멀쩡한 자살 방법이 있을 텐데.”

노마드에겐 장비가 부족했다. 나이트 시티 시내에서 요구 성능의 사이버덱을 구한 것까진 좋았으나, 시 외곽에서 홀로 라펜 쉬브에게 물어뜯기고 있던 그를 조니가 발견했더랬다. 사정을 듣고 의문을 품는 조니에게 노마드는 자신감이 넘치는 어조로 답했었다.

“그렇게 거창한 건 아니야. 지금은 그쪽도 관심이 시들해져서 허술하게 보관해두고 있는 데이터거든. 서랍 구석에 처박아둔 채 까먹은 종이에 벌레 먹은 자국을 남기는 정도의 작업이지.”

두려움이 없다는 것이 젊은 자의 재산이었다. 조니는 특유의 확신에 차 있는 그가 마음에 들었다. 덕분에 라펜 쉬브의 총격을 맞아 너덜거리는 렌탈 갈레나를 이끌고 배드랜드 남부, 바이오테크니카의 단백질 농장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언덕의 버려진 오두막까지 와 있는 셈이었다.

“끝날 때까지 기다려. 욕조에 들어가기 전에 패밀리에 연락할 거야. 내가 일 다 했을 쯤에 딱 맞춰서 마중 오도록.”

노마드는 폐차 직전의 갈레나 대신 패밀리의 차에 조니를 태워서 보내주겠다며 딱 잘라 말했다. 그들은 결코 빚을 지기만 하지 않으며 반드시 되갚는다——특히 그것이 자신과 패밀리가 진 신세라면 더더욱. 일생 몇 번이나 알데칼도와 어울릴 일이 있던 조니는 그들의 원칙엔 익숙했기에 그저 어깨를 으쓱거렸다.

“캠프가 어딘데?”

“동쪽에.”

“팬앰네?”

조니는 아차 싶어졌다.

“그래, 브라이트 패밀리. 팬앰을 아네?”

“예전에 조금.”

“그럼 사울도 알지? 이번 일은 사울이 부탁한 거야. 예전에 바이오테크니카랑 가계약이 오갔었는데, 언젠가 그게 발목을 붙잡을지도 모른다면서.”

“팬앰이었으면 그냥 팬저 끌고 갈아엎자고 했을 텐데.”

“잘 아네. 그래서 둘이 또 대판 싸웠지.”

조니는 곤혹감과 그리움 사이에서 수평을 잡기 위해 애썼다. 간접적으로나마 듣는 옛 지인들의 근황에 치밀어오르는 반가움과 쓸쓸함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보고 가. 예전 친구라니 팬앰도 반가워할걸.”

“날 못 알아볼 거야.”

알아보는 것도 곤란했다. 그러나 호기심 많은 노마드는 조니에게 팬앰과의 사이, 그리고 패밀리와의 인연을 캐묻기 시작했다.

대답하기 귀찮아질 때쯤에 덜그럭, 요란한 소음이 났다. 냉동고 안에 얼음이 채워지는 소리였다. 그걸 빌미로 조니는 대화를 끊고 일어나 냉동고 문짝을 열어보았다. 서늘한 냉기가 피부에 바로 닿았다. 조니는 테킬라를 냉동고에 처박고는 다시 문짝을 닫았다.

 


 

젊은 노마드는 얼음 욕조에 가만히 누워있었다. 조니는 그의 목덜미에 연결된 케이블이 욕조 바깥에 놓은 사이버덱과 이어져 있는 걸 눈으로 좇았다. 알트의 모습이 겹치는 것과 동시에 뼈가 시리도록 차가웠던 얼음 욕조의 온도가 떠올랐다. 두 개의 기억이 한데 겹칠 때마다 조니는 허공의 한 점을 골라서 노려보았다. 지금의 현상을 시신경에서 뇌까지 전달해 뚜렷하게 상기시키기 위해 무던히 애를 쓰는 것이다.

센촌. 조니가 얼려두었던 테킬라 병은 욕조 안에서 얼음과 동일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다. 조니는 알콜의 맛이 그리워져 입맛을 다셨다. 입술에 붙어있던 자글거리는 모래알이 혀 위로 굴러떨어졌다.

메시지가 도착했다.

케이블을 뽑아

발신자 불명의 메시지였다. 눈앞의 노마드가 보냈나?

그 순간 사이버덱에서 소름 끼치도록 높은 삐 소리가 울렸다. 사용자의 심전도 파형이 일직선이 되었다는 경고음이었다. 조니는 욕조로 달려들었다. 노마드의 미적지근한 상체를 얼음물 밖으로 끌어올리자 다시 메시지가 왔다.

케이블을 뽑아 조니

조니는 노마드의 목덜미에 삽입된 플러그를 단단히 붙잡고는 그대로 멈추었다. 2013년의 순간이 뇌리에서 플래시백 된다. 힘없이 축 늘어지던 알트의 몸. 거대한 파도가 되어 닥쳐오던 상실감. 증오. 방아쇠.

지금 조니 지금 지금 지금 지금 지금

조니는 있는 힘껏 케이블을 뽑아냈다. 사이버덱의 경고 소리가 멎고 노마드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이런 씨발! 대체 뭐였던 거야?”

조니는 욕설을 내뱉으며 노마드의 몸을 마저 욕조 밖으로 끌어내었다. 푹 젖은 두 사람의 몸이 먼지 바닥을 뒹굴었다. 노마드는 헐떡이며 말했다.

“운이……안 좋았어. 넷러너한테 들켜서 도망치다가, 결국 잡혀서…….”

“네가 보냈어? 메시지.”

“무슨 메시지?”

노마드의 물음에 조니는 재차 메시지 창을 확인했다.

[이 메시지는 삭제되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어떻게 알고 케이블을 뽑아 준 거야?”

조니는 안구 표면의 메시지 창과 목덜미를 문지르고 있는 노마드를 벙찐 표정으로 번갈아 바라보았다.

“넷러너 친구한테 도와주라고 연락이라도 넣었던 거야?”

“아니.”

“이상하군.”

오두막 바깥에서 차 바퀴가 모래와 돌을 밟으며 굴러 들어오는 소리가 났다. 그들은 경적을 울려 실내에 있는 젊은 노마드를 불렀다.

“도망치던 중에 사이버스페이스에서 누군가를 만났어. 네 친구라고 생각했는데.”

노마드는 그 인물이 바이오테크니카 넷러너의 추적으로부터 자신을 구해주었다고 했다.

조니는 노마드가 어째서 그 인물을 자신의 친구라고 여겼는지 알 법한 느낌이 들었다. 그 이유를 노마드의 입으로 듣기 전부터 심장이 이상하게 빨리 뛰며 조여왔다.

“이름이 V라고 했어.”

 


 

“정말 같이 안 갈 거야? 중간까지라도 태워서 보내줄게.”

노마드는 현관의 문간을 밟고 서서 아쉬운 투로 조니에게 재차 권유했다. 노마드의 등 뒤에서 배드랜드의 햇빛이 강하게 찔러 들어왔다. 실내의 조도에 익숙해져 있던 조니는 눈을 찌푸렸다.

“가는 방향이 달라.”

“어디로 가는데? 나이트 시티가 아니야?”

“그래. 캘리포니아주 바깥이야.”

노마드는 놀라는 눈치였다. 고개를 갸웃거린다.

“나랑 마주쳤을 때 분명 나이트 시티로 향하던 중 아니었어? 거기에 볼일이 있는 줄 알았는데.”

“있었지.”

조니는 의뭉스러운 대답을 던지고는 혼자 킬킬 웃었다.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노마드의 표정이 재밌었기 때문이었다. 그걸 숨기듯 조니는 재빨리 농을 던졌다.

“팬저를 끌고 와야겠네.”

“그래야 할 지도.”

두 사람은 팬저를 끌고 바이오테크니카의 단백질 농장을 있는 대로 부숴버리는 팬앰을 어렵지 않게 떠올렸는지 동시에 서로를 바라보며 빙긋 웃었다. 노마드는 임무에 실패했지만 대수롭지 않아 보였다. 지금은 죽음의 강 저편에서 끌어올려진 삶이 더 인상 깊은 모양이었다.

노마드는 등을 돌리다가도 여전히 아쉬운지 생명의 은인인 조니에게 연거푸 작별 인사를 했다. 다시 만나자, 팬앰이 기억 못 해도 내가 반겨줄게, 술이라도 한잔 하자……. 조니는 그 모든 제안을 적당히 어깨를 으쓱이며 흘려넘겼다. 조니 자신도 언제 배드랜드에 다시 방문할지 몰랐으니 전부 기약 없는 약속으로 치부할 뿐이었다. 너무 알짱거리면 소식을 들은 로그가 자신을 죽이러 올지도 모르고.

노마드를 재촉하는 목소리가 들리고 나서야 그는 조니에게서 등을 마저 돌렸다. 그가 햇볕 속으로, 패밀리의 차 안으로 걸어 들어가는 모습을 조니는 문간 안쪽의 응달에서 지켜보았다. 흙먼지가 피어오르며 그들이 떠나자 오두막 앞엔 총알 자국이 그득한 갈레나만 남게 되었다.

조니는 밖으로 나서는 대신에 다시 집 안으로 발을 돌렸다. 혹시 남아있을 센촌 테킬라가 있지 않을까 찾고 싶어졌다. 아니면 얼음 욕조에 담가 둔 걸 따버릴까. 지금은 굉장히 술을 마시고 싶은 기분이었다.

오두막 곳곳에는 조니와 젊은 노마드가 만든 새로운 흔적들이 곳곳에 남아있었다. 먼지들을 밟은 발자국, 잘 돌아가는 냉동고, 대충 모양새만 흉내 낸 얼음 욕조, 채 마르지 않은 물 자국, 지워진 메시지. 그 흔적들만으로 조니는 모든 것을 눈앞에 있는 일들처럼 생생하게 떠올릴 수 있었다. 조니 실버핸드가 열망했던 것들은 언제나 불타버린 뒤의 열기와 재만을 남겼다. 그러나 그만은 가장 화려하고 아름답게 피어오르던 불꽃을 기억한다.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들.

A thing of beauty - I know
Will never fade away……

노랫소리는 콘서트장에서, 조니의 입에서, 레코드판에서, 라디오에서, V의 입으로 흘러나왔다. 정말 오래간만에 외롭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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