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니 실버핸드~케리 유로다인 퀘스트라인 스포일러. 케리 로맨스 라인 진행하다가 원나잇만 하고 거절한 시점
노스사이드 임대 아파트의 비좁은 샤워실에서 나오자, 침대 위에 제 것인 양 대자로 누워있는 조니가 바로 보인다. 샤워실에 들어가기 직전까지도 그는 V에게 왜 번지르르한 기업 플라자의 아파트가 아니라 냄새나는 싸구려 아파트로 돌아와 청승을 떠냐고 핀잔을 주었더랬다.
“자기가 차놓고 표정은 차인 사람이군.”
조니가 고개만 들어 V의 얼굴을 확인했다. V는 몸의 물기를 대충 훑었던 타올을 어깨에 걸치고는, 처덕거리며 젖은 발자국 두어 개를 남기면서 침대 빈자리에 아무렇게나 걸터앉았다.
V는 작은 목소리로 조니의 의문에 답했다.
“케리는 나랑 안 어울려.”
허! 기가 찬다는 듯 조니가 외쳤다. 제발, V! 라며 탄식하기도 했다. 조니는 구둣발로 V의 궁둥이를 밀치며(물론 V는 아무 감각도 들지 않았다) 말했다.
“왜 이래? 그 보트에 누가 있었더라면 참으로 바퀴벌레 같은 한 쌍이라며 박수를 쳐줬을 텐데. 그래, 마침 내가 있었지. 끝내주던데, 나도 불구덩이 속에서의 섹스는 안 해봤었는데.”
“그만해, 조니. 그러지 마.”
V는 결국 한숨을 토하며 얼굴을 쓸어내렸다. 동그랗게 굽은 V의 등 뒤에서 조니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렐릭 유령인 조니에게 질량이 있을 리 만무했음에도 V는 침대 스프링이 천천히 삐걱거렸다는 착각이 들었다.
“케리는 널 마음에 들어 했어.”
“나도 알아. 그저……케리는 너무 순수한 사람이야.”
“‘멍청한’을 잘못 말한 건 아니고?”
V는 작게 웃었다. 부정할만한 감상은 아니었다. 케리 유로다인, 바보 같고 순수한 사람.
“그냥 내가 케리의……잠깐 스쳐 지나갔던 뮤즈 같은 게 되는 것도 좋겠다 싶어서.”
“웃기는 소릴. 그래, 좋아. 자기가 꼭 더러운 짓이라도 저지른 사람이 됐다는 것처럼 얘기하고 있는데, 털어놓아 보시지.”
V는 입술을 우물거리다가 바닥에 시선을 고정한 채 고해하기 시작했다.
“난 케리가 조니 실버핸드의 친구여서 잤던 거야.”
눈치를 보는 모습이 꼭 어린애가 혼날 것을 각오하는 꼴과 비슷했다.
“물론 케리는 매력적인 사람이야. 그렇지만 흥미본위로 다가갔다는 건……아, 씨발……부정할 수가 없네. 그래서, 케리는 이제야 겨우 조니 실버핸드의 그림자에서 벗어났는데 정작 내가 이런 마음을 갖고 케리랑 사귈 순 없잖아.”
시야 한쪽이 푸른 노이즈로 일그러졌다. 굳이 고개를 돌리지 않아도 조니가 제 곁에 나란히 걸터앉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내가 있어서 케리를 포기했다는 거로군.”
“꼭 그런 건 아니야, 조니——”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
고개를 들어 돌아보자, 조니는 선글라스를 벗어 손안에서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방해 안 할게. 케리한테 연락해. 그 녀석도 반가워할 테니까.”
조니의 목소리는 확연히 가라앉아 있었다. 많은 상념이 깃들어있는 옆얼굴이었다. V는 가슴 속에 무언가 무거운 것이 덜컥 떨어진 느낌이 들었다.
조니는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나는 네가 누구와 사랑을 하든 섹스를 하든 상관 안 해. 엿 같은 자이바츠 새끼들, 거기 휘말려서 나이트 시티의 호구가 되는 너, 그런 건 백 번을 끼어들어 나불거려도 부족하지. 멍청한 짓 하다 뒤지게 생겼으니까. 하지만——”
조니의 목에 걸린 군번줄이 찰랑거렸다.
“——그런 것 말고는 내가 뭐라 간섭할 일 없을 거야. 네 인생이야, 내 것이 아니라. 돌려준다고 했었잖아.”
“조니…….”
V는 조니가 자신에게 실망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아니, 조니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는 걸까——둘 다일지도. 어느 쪽이든 조니가 기껏 내린 결정을 V가 침범했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었다.
로그를 만나고, 못다 했던 마지막 무대를 마치고, 케리에게 생전에 쓰던 기타를 넘겨주고, 마지막으론 오메가 차단제를 먹어 V에게 몸을 돌려주었던 일련의 과정들은 조니 실버핸드의 ‘성불’을 의미했다. 아라사카 핵폭탄 테러를 마지막으로 갑작스레 세상과 작별한 것은 비록 조니 자신이 줄곧 예상해왔던 피날레와는 달랐지만, 그는 만족했다——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스스로 한 선택의 결과였고, 지나간 시간을 바꿀 수도 없으니까. 다만 좀 더 시간이 있었더라면, 좀 더 기회가 있었더라면 작별 인사라도 할 수 있지 않았을까——
그에 관해선 조니는 엄청난 행운아였다. 딤섬을 사러 나가는 도중에도 총에 맞아 비명횡사할 수 있는 그 나이트 시티에서 제 죽음을 변호하고 끝맺을 기회를 가졌으니까. 그게 정신만 회로에 새겨져 생판 모르는 남의 뇌에 기생하는, 희한하고도 비참한 꼬락서니로 실현됐지만——‘그렇지만 내가 들어간 대가리가 어떤 멍청한 새끼가 아니라 네 거라서 정말 다행이야.’ 그건 조니 나름의 완곡한 감사 표현이었다. V는 제대로 고맙다는 말도 못 하냐며 핀잔을 얹었지만서도.
이제 미련은 없었다. 조니 실버핸드는 이제 정말로, 완벽하게, 죽은 사람이 되었다. 이제 이 좆같은 렐릭 이슈만 해결하면 V가 누구랑 떡을 치든 지지고 볶든 자유라고, 씨발! 근데 나 때문에 그러질 못한다고? V, 이 멍청하고 안일한 개자식아.
“로그랑 헤어졌을 때 말이야…….”
침울하게 상념을 거치다가 슬슬 열이 뻗쳐 올라와 V에게 한마디 할까 하던 와중에, V가 말을 걸어왔다.
“갑자기 왜 로그 타령이야?”
살짝 날 선——V가 듣기엔 토라진 톤으로 조니가 대꾸했다.
“아니, 들어봐. 그때 영화관에서 네가 로그와 무슨 얘기를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한테 몸을 돌려줬을 때 있잖아…….”
V는 이 얘기를 하는 동안 굉장히 머뭇거렸다. 굳이 며칠 전의 얘기를 꺼낼락 말락 하는 V를 보며 조니는 눈썹 한쪽을 치켜떴다. 잠시 뒤 V는 마음을 굳힌 듯 입을 열었다.
“그때 난 네가……별로 믿고 싶진 않았는데, 네가 울었나 했어.”
“난 안 울어.”
“그래, 그러시겠지.”
예상했던 답변이라는 듯 V는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했다.
“그냥 초점이 덜 돌아왔나 했어. 키로시 안구가 잠깐 오작동을 했나 했지. 한참을 깜빡여도 초점이 돌아오질 않더라. 네 얼굴도 뿌옇게 보였고. 그래서 눈을 비볐는데…….”
V는 침을 한 번 삼켰다.
“그래, 네가 운 게 아닐 수도 있었겠다. 운 건 나였거든. 눈을 비비니까 갑자기 눈물이 나더라.”
조니는 침묵을 지켰다. 분명 한 몸을 공유하니 V가 울었다는 걸 알 법도 한데 잊어버린 건지, 모른 체를 하는 건지 V로서는 알 길이 없었다. 정말 몰랐을 수도 있었겠단 생각도 들었다. 상대는 조니니까.
“나도 모르겠어, 왜 울었던 건지. 로그한테 차인 네가 불쌍했을 수도 있고…….”
“동정해줬다니 참으로 고맙네.”
“비웃는 게 아니야. 정말로……알잖아, 버려진 자동차 영화관에 혼자 남아서 본 광경을. 나, 나는…….”
V는 젖은 머리칼을 쓸어 넘기는가 싶더니, 뒤통수를 부여잡으며 고개를 푹 숙였다.
“외롭다고 느꼈어……. 다른 사람들은 다들 널 잘 알고 있잖아.”
조니는 무어라 말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가, 도로 닫았다. 과연 그도 이 상황이 당혹스러운지 할 말을 찾는 모양이었다.
“내 머릿속에 조니 실버핸드가 있는 거랑, 조니 실버핸드의 곁에 있던 사람이라는 건 굉장히 다르다고 느꼈다고. 그러니까…….”
“이런 비슷한 말을 어디서 많이 들어봤는데…….”
“징그럽지. 알아, 안다고……나는 50년 전의 조니 실버핸드를 알고 싶어서 그 친구인 케리 유로다인을 이용했어. 케리와 가까워지면 나도 조니의……뭐라도 될 줄 알고. 그게 다야. 완전 개새끼지.”
자. 어떻게 할까, 조니. 이 옹송그리고 있는 작은 개자식은 자기가 조니 실버핸드의 주변 사람에게 질투하고 있다는 말을 당사자 앞에서 털어놓는 멍청이다. 50년 전의 조니 실버핸드를 알고 싶다고? 씨발, 어처구니가 없네. 지금은 2077년인데도.
“젠장, 하긴 그 녀석들 너무 바뀐 게 없어서 나도 잠깐 헷갈리더라.”
조니는 벅벅 머리를 긁더니 V를 응시했다.
“그래도 50년은 긴 세월이긴 하더라. 케리 그 새끼, 전엔 그런 짓 안 했어. 네가 있어서 그랬나 싶기도 하고.”
V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입꼬리를 올려 웃고 있는 조니와 눈이 마주쳤다.
“예전 같았으면 너한테 차이고 집에 돌아가서 엽총 들고 죽어버리겠다며 지랄하다 기타 끌어안고 훌쩍였을 텐데.”
“지금은 안 그럴까?”
“몰라. 나중에 뉴스 54에 뜨겠지. ‘케리 유로다인, 또다시 자살 소동’이든 ‘케리 유로다인, 실연의 아픔 딛고 신곡 발표’든.”
V가 작게 키득거렸다.
“네가 확인해. 난 사라질 거니까.”
V의 웃음소리가 멎었다. 조니는 여전히 V와 눈을 맞추고 있었다.
“조니, 난…….”
“장례식은 끝났어.”
조니는 줄곧 손에 들려있던 보잉 선글라스를 다시 썼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좁은 방바닥을 딛고 한 바퀴 빙글 돌았다.
“영광이라고 생각해. 조니 실버핸드가 죽기 직전에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궁금해하던 놈들이 많잖아. 그걸 가장 순수한 정보 값으로, 심지어 최신 펌웨어 버전으로 뇌에다 쑤셔 박히는 게 바로 너야, V.”
양팔을 벌리자 벽의 끝에서 건너편 끝까지 닿는다. 지직거리는 푸른 노이즈가 생기며 조니의 손이 벽면에 먹히는 걸 보고는 V는 눈을 돌렸다.
“남들이 믿든 믿지 않든 좆 까고 넌 그냥 이렇게 말하고 다녀. 너만 아는 내용일 거라고 자랑하면서 다니라고. ‘조니의 마지막 말은 이러했습니다——잘 있거라, 세상이여!’”
“조니! 난 네가——”
방은 텅 비어있었다.
24시간 돌아가는 컴퓨터의 모터 소음만이 잔물결이 되어 방을 채웠다.
씨발. V는 속으로 짤막하게 욕을 내뱉으며 침대에 쓰러지듯 몸을 던졌다. 낡은 스프링이 요란하게 삐걱거렸다. 옆으로 몸을 뒹굴면 V의 체중에 맞춰 침대 시트가 움푹 팼다.
머릿속으로 아무리 조니를 불러봤자 조니는 자신이 나오고 싶을 때만 등장하고 말을 걸고 싶을 때만 나불거린다. 이미 그 사실을 익히 알고 있던 V는 금방 포기하고는 눈을 꾹 감았다. 조니의 어설픈 위로가 머릿속을 맴돌며 V의 사고를 휘저었다. 하고 싶은 말과 해야 할 말, 해 봤자 소용없는 말들이 어지러이 소용돌이쳤다.
결국 V는 어쩔 수 없이 인정하기로 했다. 자신이 조니와 아무리 가까워져봤자 그의 자살 기도는 막을 수가 없다고. 그 누구도 막을 수 없을 것이다. 이미 누구도 막지 못했기에 조니는 죽은 것이었다.
그렇다면 조니의 외로움 역시 아무도 달래지 못한다는 게 되겠지. 너는 늘 그랬다. 알트조차 네 외로움을 달래게 놔두질 않았지…….
조니, 난 네가 없어지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네가 널 구해준 이의 군번줄에 대고 맹세했듯, 나도 기꺼이 내 목숨을 바쳐 널 구해주고 싶다고 맹세했는데.
V는 이제야 수도엔도트라이젠을 삼킨 걸 후회했다. 이제 와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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