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됐다. 꼴은 투박하지만 이제 불은 안 나올 거야."
작업에 몰두하고 있던 맥시마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K'의 오른손은 붉은 글러브 대신 방열 소재들을 아무렇게나 기워 만든 장갑으로 감싸여 있었다.
네스츠의 전투원들과 교전하며 도망쳐 나온 직후, 두 사람은 닫혀있는 자동차 수리점에 불법 침입했다. 그들에겐 K'의 망가진 글러브로부터 튀어나와 당장이라도 모든 것을 재로 만들겠다는 양 날뛰는 쿠사나기의 불꽃을 제어하는 일이 가장 급했다. 다행히도 맥시마는 수리점의 장비와 자동차에서 뜯은 방열 소재들을 늘어놓더니, 임시 글러브를 뚝딱 만들어냈다.
맥시마의 우려답게 그것은 손을 감쌌다 뿐이지 장갑의 기능은 일절 하지 못하는 물건이었다. K'는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는 없으나 더 이상 불꽃은 뿜지 않게 된 자기 오른손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래선 손해군."
"음? 뭐가?"
"네 손. 전부 타 버렸잖아."
맥시마는 그제야 자기 손을 내려다보았다. 줄곧 불을 뿜는 K'의 오른손을 붙잡고 씨름하고 있던 탓에 외피가 전부 녹아내리고 눌어붙어, 그의 양손은 시커먼 검댕과 연소한 실리콘 조각들로 지저분해져 있었다.
"뭘, 강철인데. 신경 쓰지 마."
말하며 가볍게 손을 털자, 떨어지는 그을음 사이로 은빛 크롬으로 된 손가락이 드러났다. 아무렇지도 않은 듯한 맥시마의 말투대로, 몸이 기계로 대체된 사이보그의 금속질 손은 고온의 열에도 끄떡없었던 모양이다.
"걱정해주는 건가?"
"쯧……. '앞으로'를 얘기한 거야."
"아아, 그렇군."
말이 짧은 K' 특유의 어휘였으나 맥시마는 금방 그의 의도를 캐치했다.
요컨대, 네스츠를 배신하고 나온 그들은 의지할 데 없는 완전한 빈손이란 것이다. 여기 있는 것은 다치고 지친 몸뚱아리를 가진, 연고 없는 두 실험체뿐. 이제는 망가지고 고장이 나도 더 이상 조직의 지원은 바랄 수도 없으니 큰 손해라고 볼 수 있었다.
그러나 맥시마는 웃어 보였다.
"앞으로 나는 네스츠를 친다."
그 말에 심드렁해 보이던 K'도 과연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렇게 된 이상 과격한 방법이 되겠지만,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 네스츠를 바깥에서부터 차근차근 뭉개주는 수밖에 없겠지."
"……무리야."
"해야 해."
지나치게 단호한 맥시마가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 K'는 입을 다물었다. 맥시마는 쓴웃음을 감추지 않았다.
"죽은 친구의 복수다. 이해하지 않아도 상관없어."
그러나, 막상 맥시마는 K'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다. 복수를 위해 모든 것을 버리고, 원망하는 조직의 기술력으로 기계 신체가 되어버렸음에도 빚을 갚아야 한단 원념이 있는 자신과는 달리, 눈앞의 청년에겐 모든 것이 갑작스러울 터였다.
크리자리드의 폭로가 떠오른다. 부모의 기억도 없다. 유소년기의 추억도 없다. 지금 K'에게는 자신이 시험관에서 태어났을 크리자리드의 클론이라는 말과, 제어하지 못하는 불꽃이 몸에 깃들어있단 사실 외에는 자신을 이루고 있는 것이 없었다. 아무것도 없었다.
맥시마는 금방이라도 부스러질 것 같은 얄팍한 자아를 붙든 채 흔들리고 있는 청년의 동공을 바라보며 물었다.
"너는 어쩔 거지?"
"……나는……."
그러고는 K'는 다시 입을 다물었다. 무겁게 가라앉던 눈이 앞머리 그늘 아래로 사라진다.
더 이상 불을 뿜지 않게 되어 안전한데도, 그의 오른손은 맥시마가 정비를 끝낸 뒤로 단 한 번도 테이블 위에서 움직인 적이 없었다.
납덩어리 같을 것이다.
"……시간과 재료만 있으면 글러브는 다시 만들 수 있어. 데이터는 전부 머릿속에 있으니 너무 걱정 말라고."
맥시마는 너스레를 떨며 투박한 모양새의 글러브를 손가락 끝으로 톡톡 쳤다. 화제를 바꿀 심산이었다.
"……뭉개버린다."
순간, 글러브를 넘어서 뜨거운 열기가 확 끼쳤다. K'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나도, 네스츠를 뭉개버린다. 복수니 뭐니 그런 건 알 바 아니야. 마음에 안 들어. 모든 게 다."
K'의 오른손 위로 피어오르는 아지랑이를 보며, 맥시마는 눈을 가늘게 떴다. 오래 버티진 못하겠군. 임시로 때운 방열 장갑도, K' 본인도 마찬가지였다. 갈 곳을 잃은 열기는 파괴만을 위해 터지고 확산할 것이다. 불이란 건 모든 것을 연소할 때까지 멈추지 않는다. 그는 얼마 되지도 않는 빈약한 제 내장까지 전부 긁어모아, 새카만 재가 될 때까지 불타는 것을 그만두지 않을 것이다.
아니……, 그만두는 방법을 모르는 것에 가깝겠군. 네스츠는 그에게 불태우는 것 외에는 가르친 적이 없었을 터였다.
그렇다면 무엇을 태워야 하는지 정도는 옆에서 알려줘야겠지.
"다행이군, 함께 움직여준다면 나야 큰 환영이야. 이대로 녀석들이 귀중한 실험체를 포기할 리도 없고, 둘인 편이 살아남을 확률도 훨씬 높지."
맥시마는 금속 뼈대만 남아있는 제 오른손을 내밀었다.
"그럼, 앞으로 잘 부탁한다, 파트너."
"'파트너'?"
익숙하지 않은 말이라도 되는 양 어리둥절하게 되뇌는 K'에게, 맥시마는 어깨를 으쓱여주었다.
"여기에 있는 너와 나 얘기지."
K'는 맥시마가 내민 오른손과 그의 얼굴을 번갈아 보더니, 이윽고 줄곧 미동도 없던 오른손을 움직여 맥시마의 오른손에 맞대었다.
캉, 둔탁한 소리가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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