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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터는 파기했어."

히메미야 유리카에게 공유 받은 자료들의 페이지를 넘기며, 신야 쥰은 담담히 고했다.

자료들은 지금껏 UGN이 수집한 '유산(레거시)'에 대한 정보를 말하고 있었다. 규격 외의 힘——신드롬이나 이펙트라는 종별로는 규정할 수 없는 현상과 그것을 일으키는 매개체. 꾸준히 발견되어 온 현자의 돌도 유산이라고 할 수 있으며, 근래에 들어서는 우로보로스 신드롬을 시작으로 다양한 유산들이 발견되고 있다. 20년 전의 대확산보다도 이전부터 초상적인 힘으로 갖은 신화나 설화를 남겼던 것, 그것이 지금에 와서 관측되고 명명되며 '레거시'라는 카테고리로 분류되고 있다.

16년 전부터 레니게이드 바이러스에 대해 연구해 온 신야 쥰에게 있어, 유산이란 생소하고 새로운 분야였다. 기실, 레니게이드 비잉이라는 개념 자체를 체감하고 이해한 것조차도 몇 년이 지나지 않았다. 고작 재작년 겨울의 일이었고, 작년 봄 즈음의 사건이었다(심지어 지금 모시고 있는 지부장이 인간이 아니라는 사실에도 이따금씩 적응을 못 하고 있었다).

즉, 지식으로써 머리에 집어넣고 있어도 체화는 느리다는 것이 신야 쥰의 성질이었다. 그러다보니 직접 몸으로 깨닫고 난 지금에 이르러서야 유산에 눈을 돌리고 있는 것이다. 규격 외의 힘이라면 어쩌면, 지금껏 인간의 두뇌와 힘으로 이루지 못한 일들을 이루게 해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예컨대 아직도 큰 진전이 없는, 졈을 인간으로 되돌리는 것에 대한 연구라거나——.

헌데 신야 쥰에게는 자신에게 불리할 일을 어물쩍 넘기려는 습성도 있었다. 지금처럼, 본래 히메미야 유리카에게 넘기겠다고 했던 '우로보로스 특기사항 관찰 보고--관찰 대상: No.0 Aleph'에 대한 데이터를 파기했다며 눈도 마주치지 않고 있는 태도처럼 말이다.

"그건 그냥 알려주지 않겠다는 말이잖아?"

히메미야 유리카에게 크게 낙담한 기색은 없었다. 놀라기는 했지만, 그 신야 쥰이 어째서 이렇게 뻔한 모르쇠짓을 하는 지에 더 흥미가 돋은 모양이었다.

"나는 이렇게 쥰 군에게 도움이 되려고 밤새 자료들 정리까지 해 왔는데. 1:1 교환이 되지 않는 거, 어떻게 생각해?"

"다음에 도와달라고 하면 올게. 뭣하면 몇 개월 간 연구실 수석 조수로 잡아둔다해도 뭐라 안 할테니까."

신야 쥰은 종이를 위로 넘겼다가, 다시 되돌려 읽었던 부분을 다시 읽거나 하고 있었다. 여전히 눈은 마주치지 않았다.

"알레프의 데이터라서 넘기기 싫은 거지?"

히메미야 유리카가 떠보는 소리에 그제야 손가락이 멈춘다. 히메미야는 흐응, 콧소리를 내며 맞는 자리에 옳게 쑤셨다는 쾌감을 작게 표했다.

"쥰 군은 사람을 싫어하는 줄 알았는데 말이야."

"그런 티를 낸 적은 없어. 그 얘기는 그만 둬주지 않겠어?"

"내가 이 랩에 오고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봤던 때에도 굉장히 티내고 있었는데?"

"……."

제일 떠올리기 싫은 시기다. 신야는 눈살을 구기며 히메미야를 곁눈질했다.

히메미야가 R랩에 입성했을 무렵의 신야는 더이상 첫인상을 좋게 주는 것도, 사교적인 커뮤니케이션도 생각하지 못 할 정도로 폐인이었다. 유일하게 대화에 열의를 보였던 때는 자신과 비슷한 정도로——'매드'라는 말이 붙을 정도로 연구에 몰두하던 연구원들을 상대할 때였다.

사도라든가, 히메미야가 그러했다. 옆에서 보면 정상적인 대화들은 아니었지만,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서로가 세계의 유일한 이해자인 것 마냥 대화에 열을 올리곤 했다. 히메미야의 기억 속에 가장 인상깊게 남아 있는 신야 쥰이란 그러한 폐쇄적이고 광적인 일면이었다.

그렇다고 그 때에 '사람이 싫다'고 딱 잘라 말한 적은 없다——신야는 그 시절을 그 정도로 두리뭉술하게 인지하고 있었다. 애초에 더 깊게 생각하고 싶지 않아했다. 그건 '자신에게 불리할 일'이다.

"그는 데이터가 아니라 사람인 거구나, 쥰 군한테는."

눈에 주고 있던 힘이 탁 풀렸다.

"그럼 어쩔 수 없지. 사실 쥰 군에게 알레프의 데이터를 부탁한 건 그냥 수고를 좀 덜려는 정도의 부탁이었고. 쥰 군이 정리해주면 편했겠지만~."

신야는 히메미야의 말이 맞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지금 한 말이 아니라, 그 전의 문장이.

No.0 Aleph——크리스 M. 테일러는 데이터나, 관찰 대상이나, 실험체가 아니라 '사람'이었다. 정리하면 대단히 당연한 명제인데도 신야는 여태 그것에 대해 혼란스러워하고 있었다.

"……미안해. 도와준 은혜는 꼭 갚도록 할게."

신야는 더듬더듬, 간신히 입을 열어 익숙하지 않은 사과를 했다.

"그건 그때가서 받을게."

히메미야는 눈웃음을 지으며 사과를 수용했다. 지금쯤 머릿속에서 '신야 쥰이 남에게 허리도 숙일 줄 알게 되었구나'라고 생각하며 지금의 모습과 폐인일 적의 모습을 비교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자료 정리 고마워. 잠깐 훑어봤는데도 굉장히 잘 되어있더군. 오늘은 일찍 돌아가봐야해서 이만 들어갈게."

말을 더 잇기에도 민망하다고 판단한 신야는 서류를 그러모으며 대화를 종료하려 했다.

다행히도 히메미야는 말로든 몸으로든 그를 더 붙잡지 않았다. 가볍게 손을 흔들며 작별인사를 덧붙였을 뿐이었다.

"응, 쥰 군. 잘 지내고."

……다음을 기약하는 말에 어째선지 코 끝이 시큰거렸다. 도망치듯 몸을 돌리기 직전에 마지막으로 히메미야의 얼굴을 눈에 담았다. 히메미야는 적당한 웃음을 지어주며 신야를 배웅하고 있었다.

당연하게 존재하던 것들을 생경하다고 여기게 되었다. 약속을 어겼는데도 넘어가주는 히메미야도 그렇고, 빈정거리거나 멀쩡한 척 하지 않고 사과의 말을 입에 올리는 자신도 그렇고. 신야는 차내를 채우고 있는, 무기질의 표면과 찬 공기가 섞인 냄새를 크게 들이마셨다가 내쉬었다.

오버드로 각성한 직후에는 당연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 늘어 크게 안심했었다. 산만하게 흩뿌려져있던 정보와 사건들은 알고보니 선명한 길 하나를 가리키는 지표였다. 이를테면 집요하게 학업 성적을 확인하는 아버지라는 현상과 친척 모임의 뒷켠으로 자신을 끌고 나와 먼저 집으로 돌아가라 일렀던 어머니에 대한 일건은, 부모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거라는 길을 가리키고 있었다. 부모를 미워해도 된다는 확신이 생긴 것은 큰 다행이었다.

그러다 점점 당연하기 때문에 손댈 수 없는 것들이 많아져만 갔다. 각성 실험에 희생된 '데이터'들이 그러했다. 어떻게 해도 과반이 되는 확률은 바꿀 수 없었다. 그것을 과반에서 절반으로 줄이기 위해 수 없이 많은 실험을 거쳤으나, 예산과 실험체의 단위만 늘어날 뿐이었다.

그러다보니 완전히 좌절할 일이 생겼다.

덕분에 고작 영점 몇 퍼센트의 성공에 집착할 바에는 덤벼들지 말자는 보신주의적 생각이 피어났다.

그랬더니 마음이 편해졌다. 정신적으론 죽음만 기다리는 사람에 가까웠지만.

우연히 만난 크리스 M. 테일러는 확률로 따지면 그 영점 몇 퍼센트에 해당하는 개체였다. 비오버드의 육체를 기반으로 무사히 오버드로 각성하고, 우로보로스라는 유산까지 몸에 깃들었다. 템페스트의 강화 실험도 견뎌냈으며 이펙트를 사용한 백병 전투와 원거리 전술 양쪽에도 큰 문제없이 대응이 가능하다.

그건 신야가 줄곧 손에 쥐고 싶어했던 영점 몇 퍼센트의 존재였다. 신야는 자신이 끝없이 무능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니 성과를 내고 싶었다. 인정을 받고 싶었다.

데이터가 아니라 사람이구나.

히메미야의 말이 뇌리에 맴돌았다. 죄책감이 엄습했다. 크리스가 이런 자신을 미워할 거라는 생각이 계속 심장 뒷쪽에 서늘하게 드리워졌다. 신야에게는 남들이 자신을 싫어할 것이라는 생각이 지극히 당연했다. 집에서부터 그러했으니 바깥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제와서 되짚는 것이지만, 신야에게는 자신이 표현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정을 돌려주는 크리스가 줄곧 이해 불가의 존재였다. 영점 몇 퍼센트의 존재가 자신에게 호의까지 가지고 있을 가능성은 몇 퍼센트나 되지?

……'있어줘서 고마워'라는 말을 듣고나서야, 그것이 확률의 문제가 아니며 조건의 문제 또한 아니란 것을 알았다. 신야 쥰은 몸으로 직접 느끼고 나서야 비로소 떠다니는 지표들을 이해하곤 했다. 이 성가신 성질은 이번에도 거대한 상실감과 후회를 이끌고 신야를 덮쳐버리고 말았다.

'있다'는 것은 당연한 것인데, 그걸 아니라고 부정했으니 후회가 생기는 것이다.

외면하려하니 소멸해버리고 만다. 사람이 숫자가 되고, 죽음과 안녕에 이르고 만다. 존재할 방법을 갈구하다, 없어져버리고 만다.

신야는 한참이나 핸들의 가죽재질을 손 전체로 느끼고 있다가, 코를 한 번 훌쩍이고 나서야 차의 시동을 걸었다.

이번에 신야를 덮친 파도는 상당히 큰 너울이었다. 휩쓸려가지 않기 위해 이번에는 단단히 약속을 했다. 절대로, 꼭, 당신 옆에, 있겠다고.

타이어가 지면을 구르는 소리가 났다. 차체는 차갑게 굳은 주차장의 공기를 빠져나와, 왔던 길을 다시 밟고 귀로에 오른다.

절대라는 게 얼마나 오래 지속되는 개념일까? 반드시 꼭, 이라는 건 인간이 지킬 수 있는 약속인가? 메모리 다이브를 하러 간 당신이, 혹여나 더이상 당신이 아니게 되는 일이 벌어진다면 남겨진 자신은 어떡해야 할까? 차의 코 끝에서 꽁무니까지, 표지판 하나가 지나는 순간 만큼만 생각이 스쳐지나간다.

……변하지 않겠다고 말해주었다. 물기가 어려있는, 그런데도 곧은 의지와 다짐이 깊게 어른거리는 녹색의 눈을 떠올렸다. 그러자 끝을 모르던 불안이 조금 가셨다.

고작 그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누그러진다. 신야는 문득 자신이 그에게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고 있다는 걸 알았다. 곁에 있어달라는 말은, 옆에 있겠다는 말은 이런 걸 뜻하는 것이로구나. 당연하던 단어와 문장들이 하나하나 무겁게 새겨졌다. 책임의 무게였다.

신야는 입속에서 줄곧 내뱉지 못한 말을 굴렸다. 아이들에게 하고 싶었던 말이었고, 크리스에게 잘 전하지 못한 말이었고, 계속 채찍질해 온 스스로에게 건네는 말이었다.

미안해, 고마워, 정말 사랑해.

더이상 뒤늦게 후회하지 않으려면, 반드시 잘 말할 줄 알아야하는 것들이었다. 혀 아래에서 그것들을 몇 번이나 곱씹어보고 연습하면서 신야는 집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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